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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다시 보다고려·조선시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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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nion
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4-07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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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다시 보다고려·조선시대 기록에는 목멱산풍수적으론 도성을 감싸는 案山나무 193종 숲 이룬 서울의 허파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한양 도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산(案山)으로 목멱산, 말뫼, 종남산으로도 불렸다. 아래쪽 사진은 남산 봉수대. 연합뉴스 이민부 교수 제공 높이 265m인 서울 남산의 옛 이름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목멱산(木覓山)이다. 그 의미는 '마뫼' '말뫼'로, 남산의 순우리말이다. 마뫼는 마산(馬山) 혹은 마시산(馬尸山)으로도 불린다. 밝은 산의 의미로 인경산(引慶山), 열경산(列慶山)으로도 불렸고 도성의 가장 남쪽이라는 의미로 종남산(終南山)으로도 불렀다. 명당 터의 남쪽 경계이면서 명당을 잘 막아주는 버팀대로 보았다. 남쪽에 솟아 남산인데, 말 모양으로 여긴 것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에는 거의 목멱산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일반 백성들은 남산이라 했다. 공양왕 2년(1390년) 잠시 천도한 한양에서 호랑이가 나타나니 이를 막기 위한 제사를 목멱, 북악, 성황 등에서 지내도록 했다. 조선 태종 때 남산에 목멱신사(木覓神祠)를 만들어 왕실과 백성의 안위를 위한 국사당(國師堂)으로 삼았다. 목멱단으로도 불리면서 남산 팔각정 옆에 위치한다.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도성 한양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산(案山)이다. 도성을 감싸는 4곳 산지 지형을 보면 목멱산(남주작), 북악산(북현무), 낙산(좌청룡), 인왕산(우백호)이다. 남산은 도성의 기능을 하면서도 안산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한강 건너 보이는 높은 관악산은 아득한 조산(朝山)이 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사대문 안 도성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남산의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공공용으로 조림한 것이다. 조선 도성을 한양으로 결정할 때 남쪽의 목멱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성의 남쪽 성곽을 남산이 맡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남산은 풍수지리적 기능 외에도 실질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다. 전국 봉수망의 중앙 조절 기능을 한 것이다. 남산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봉수와 지방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봉수를 조정에서, 궁궐에서 잘 관찰할 수 있었다. 지금도 조선시대의 봉화대처럼 통신·군사 시설 등 서울을 지남산을 다시 보다고려·조선시대 기록에는 목멱산풍수적으론 도성을 감싸는 案山나무 193종 숲 이룬 서울의 허파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한양 도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산(案山)으로 목멱산, 말뫼, 종남산으로도 불렸다. 아래쪽 사진은 남산 봉수대. 연합뉴스 이민부 교수 제공 높이 265m인 서울 남산의 옛 이름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목멱산(木覓山)이다. 그 의미는 '마뫼' '말뫼'로, 남산의 순우리말이다. 마뫼는 마산(馬山) 혹은 마시산(馬尸山)으로도 불린다. 밝은 산의 의미로 인경산(引慶山), 열경산(列慶山)으로도 불렸고 도성의 가장 남쪽이라는 의미로 종남산(終南山)으로도 불렀다. 명당 터의 남쪽 경계이면서 명당을 잘 막아주는 버팀대로 보았다. 남쪽에 솟아 남산인데, 말 모양으로 여긴 것이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록에는 거의 목멱산으로 나온다. 그럼에도 일반 백성들은 남산이라 했다. 공양왕 2년(1390년) 잠시 천도한 한양에서 호랑이가 나타나니 이를 막기 위한 제사를 목멱, 북악, 성황 등에서 지내도록 했다. 조선 태종 때 남산에 목멱신사(木覓神祠)를 만들어 왕실과 백성의 안위를 위한 국사당(國師堂)으로 삼았다. 목멱단으로도 불리면서 남산 팔각정 옆에 위치한다. 남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도성 한양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산(案山)이다. 도성을 감싸는 4곳 산지 지형을 보면 목멱산(남주작), 북악산(북현무), 낙산(좌청룡), 인왕산(우백호)이다. 남산은 도성의 기능을 하면서도 안산 역할도 하는 것이다. 한강 건너 보이는 높은 관악산은 아득한 조산(朝山)이 된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사대문 안 도성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남산의 소나무는 조선시대에 공공용으로 조림한 것이다. 조선 도성을 한양으로 결정할 때 남쪽의 목멱산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도성의 남쪽 성곽을 남산이 맡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남산은 풍수지리적 기능 외에도 실질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했다. 전국 봉수망의 중앙 조절 기능을 한 것이다. 남산에서 지방으로 보내는 봉수와 지방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봉수를 조정에서, 궁궐에서 잘 관찰할 수 있었다. 지금도 조선시대의 봉화대처럼 통신·군사 시설 등 서울을 지키는 기능들이 작동되고 있다. 남산에는 모두 5개의 봉수대가 있었다. 가장 동쪽은 아차산 봉수를 거쳐서 강원도와 함경도로 가고, 다음은 청계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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